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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길 위의 세상을 품다_스페셜포커스 부문에 초청된 마이클 윈터바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며

그의 최근작 <온 더 로드>(2016)를 보고 있노라면 궁금증이 생긴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울프 앨리스’를 비롯한 떠오르는 영국의 밴드를 촬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그의 최근작 <온 더 로드>(2016)를 보고 있노라면 궁금증이 생긴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이 ‘울프 앨리스’를 비롯한 떠오르는 영국의 밴드를 촬영한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나인 송즈>(2004)를 비롯한 그의 영화에서 음악에 대한 관심은 특별하다. <인 디스 월드>(2002)의 아프가니스탄 음악의 활용은 또 어떠한가.). 아니면, 의뢰를 받아서 만든 작품이었을까(최근에 진행 중인 ‘trip 시리즈’는 BBC의 텔레비전 영화로 먼저 방영이 되고, 극장판으로 편집이 되어 따로 선을 보였다). 40편이 넘는 장편 영화를 숨가쁘게 만들어 온 그의 주제는 넓다. 음악, 여행, 문학, 현실, 테러, 전쟁, 텔레비전, 탈레반, 다큐, 음식 등. 주요한 키워드만 추려도 동시대의 관심사를 모두 아우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특정한 관심만으로는 영화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윈터바텀의 영화가 ‘뜨거워질 때’는 이러한 주제들을 향한 ‘열정’을 그려갈 때다.

열정(passion)의 어원인 그리스어 파토스(pathos)는 고통, 질병, 괴로움과 관련을 맺는다. 여기서 파생된 프랑스어 ‘퐈티르(patir)’는 ‘…을 당하다’는 뜻이다. ‘passion’이라는 말 속에는 고통, 수난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열정이란 고통을 감내하거나 넘어서면서 발휘되는 에너지라는 뜻이고, 수난 그 자체야말로 열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윈터바텀 영화는 고스란히 열정의 길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대표적인 작가로 인식 시켜준 <인 디스 월드>는 파키스탄에 사는 아프가니스타의 소년이 발휘하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를 잃고 공장에서 일하는 12살의 소년 가장 자말은 런던에서 행해지는 친척의 결혼식에 사촌형 에나야를 보내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이를 기회로 여긴다. 하지만, 이들이 있는 파키스탄에서 런던까지 이동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수난사다. 곳곳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타락한 관리들의 요구도 부담스럽다.

열정을 품고 시작된 파키스탄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여정은 수난의 길이다. 이러한 길 위에서 살아가는 것,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이동하는것. 그 속에서 윈터바텀의 영화의 풍경과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에브리데이>(2012)의 여주인공 카렌처럼 감옥에 있는 남편 이안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뎌가면서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열정을 던지는 결단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를 처음으로 다뤘던 <제노바>(2008)의 주인공들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인 가족이다. 그들은 이방인이다. 하지만, 사고로 아내를 잃은 아버지 조는 10대의 두 딸과 함께 제노바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한다. 그는 세 명의 배우들이 진짜 제노바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제노바의 바닷가와 골목길을 걸어가고, 그들이 서서히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생의 한 가운데 조용히 적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삶의 가능성을 꿈꾸는 한 가족의 열정에 빨려들게 된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어서
흔히 윈터바텀의 영화 세계를 단순하게 표현하는 말은 다큐와 극의 장르적 경계를 허문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현실을 강력하게 개입시키는 그의 방식이나 극적인 형식을 취하는 데 있어서 윈터바텀의 영화는 형식적 관심을 두지 않는다. 윈터바텀의 영화는 인물들의 ‘에브리데이’나 ‘여정’을 그리면서 반복되고,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인물들의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윈터바텀의 영화에는 영원한 고통도, 확실한 희망도 없다. 그 사이의 길 위에서 영화가 펼쳐지고, 카메라가 다가간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의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밴드의 공연을 따라가면서, 클럽을 열고 파티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길 위의 인생’이 펼쳐진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윈터바텀 영화가 제시하는 길은 단순히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다. 시간을 포함하는 길의 의미다.

그 길은 다양한 관심사와 주제적 변주를 통해서도 제시된다. 실제 정사 논란을 일으켰던 <나인 송즈>는 9개의 공연에 맞춰 9개의 정사를 보여주는 형식을 통해 영화적 이미지를 통한 9개의 사랑을 구현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윈터바텀의 변주곡의 집약처럼 보인다. <코드 46>(2003)처럼 SF 장르의 문법 속에서 통제된 사랑이 열정을 통해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예외적 영화처럼 보이는 <벌거벗은 임금님>(2015)이나 <쇼크 독트린>(2009)과 같은 작품은 세계 금융 자본의 위기를 건드리거나 신자유주의 이후 만들어진 정치적 정책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벌거벗은 임금님>에서는 러셀 브랜드(코미디언이자 활동가인)의 협업을 통해서, <쇼크 독트린>에서는 캐니다의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나오미 클라인의 개념을 통해서 뜨거운 지적 영화의 형식을 구현해 보인다. 그의 영화의 상당수는 현실의 문제를 건드리거나 변화를 촉구함으로써 세계의 변화를 열망한다.

영화제에서 선보이지는 못했지만 그의 최근작은 <트립 투 스페인>(2017)이다. <트립 투 잉글랜드>(2010), <트립 투 이탈리아>(2014)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는 여전히 현실의 배우들을 실제 인물 그대로 가져온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지는 스페인의 모습은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가운데 중년 남자들의 관조적 세계가 있고, 여행에서 기대하는 약간의 일탈이 있으며, 맛난 요리를 먹고, 명소를 방문하는 일상들이 있다. 윈터바텀의 영화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길은 여전히 펼쳐져 있고, 그의 영화가 가는 길은 아직까지 넓게 펼쳐지고 있다. 길의 가운데에서 그는 숨쉬고, 노래하고, 춤추고, 파티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것이 세상의 풍경이고, 윈터바텀의 영화는 카메라로 들려주는 길의 노래다.

이상용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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